19
6월
이하展 1:3 비평_나여랑
2015 비평가 레지던시 사유게르
2015년 대안공간 아트포럼리에서 진행되는 <비평가 레지던시_사유게르 프로젝트>는 20-30대 젊은 청년 비평가들이 수년간 탐구해온 예술에 대한 시각들을 개인의 사적인 페이지가 아닌 공식적인 자료화에 대한 필요성에 의해 기획되었습니다. 그 첫번째 프로젝트로 2015 대안공간 아트포럼리 현장전으로 열리는 이하 작가의 전시에 1:3비평글이 완성 되었는데요. 이 글이 작가에게도, 작가의 관람객에게도 의미있는 작용이 될 것 같습니다. 아울러 비평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꿈꾸는 젊은 비평가들과 그들의 글에 많은 관심 부탁드리고, 곧 펼쳐치는 이하 작가의 전시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릴게요!
의도와 반응이 엇갈리기 시작한 순간,
재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여랑
‘미워도 다시 시리즈’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면 시선이 집중된다. 비슷함과 다름이 공존할 때 다름은 더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시리즈’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 ‘이하’의 작품들도 시리즈이기에 ‘다름’이 부각 될 것이다. 게다가 이하의 작품들이 시리즈로 묶여 있다는 점은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맥락적으로 보아주었으면 하는 강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하지만 자신의 의도의 흐름이 효과적으로 드러난 시리즈와 그렇지 않은 시리즈가 있다. 또한 ‘그렇지 않은 시리즈’의 경우 작가가 의도가 제대로 읽히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구현과 반응의 괴리가 굉장히 커진다. 하지만 의도와 반응이 엇갈리기 시작한 순간부터 작가 이하의 작품들은 재미가 생기기 시작한다.
목적전도(目的傳導)
이하는 여러 경로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거리로 들고 나간다. 그가 들고 나간 작품들의 대부분은 2012년 이후의 작품들이다. 대표적인 작품들로는 2012년 발표한 독재자 시리즈가 있다. 이는 자신이 독재자라고 생각한 리더를 패러디한 시리즈이다. 이하가 그린 인물들은 주로 근현대사에서 주목받았던 각국의 독재자들인데, 알록달록한 색채가 강조된 꽃밭을 배경으로 그려진 반신상이 대부분이다. 이들 작품은 단순히 인물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변형한 패러디 초상화의 특성과는 조금 다른 성향을 보인다. 슈퍼맨이나 람보, 백설공주 등 대중적 캐릭터에 실제한 인물들을 오버랩하는 식으로 표현했는데 색채의 대비가 뚜렷하고 원본이 되는 캐릭터의 특성이 침범되지 않는 선에서 구현된다. 작품 마다 원본 차용의 정도는 모두 다르다. 이러한 점은 남녀노소 누구라도 자신이 가진 선험적 이해의 범주만큼 사고하고 해석할 수 있을 만한 여지를 준다. 명확한 두 개의 캐릭터를 조화한 하나의 그림이 보는 이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이러한 부분은 이하의 독재자 시리즈가 가지는 의외의 운동성이다. 정확히 말하면 해석의 운동성이 활발하다는 것이다.
비판이라는 의도 대신 얻은 리듬감
독재자 시리즈 각각의 작품의 배경으로 그려진 꽃밭은 큰 변형 없이 반복적으로 활용된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런 양상 때문에 각각의 작품에 생명력이 더 부여된다. 같은 배경에 다른 캐릭터를 집어넣고, 또 여기다 다른 인물들을 조화시켰기 때문에 새로이 이입한 인물의 특징이 더 부각되는 시각적 효과가 생긴 것이다. 여기서의 생명력은 각 인물의 특징이 얼마나 집중도 있게 드러나는가를 의미하는데 독재자 시리즈의 작품들은 작가가 생각한 인물들의 행적이 작품에서 드러난 인물의 특징이 된다. 게다가 팝 아트를 연상시키는 강렬한 색채의 대비와 강조와 소멸이 공존하는 리듬감 있는 표현을 통해 구현된 인물들의 특징이 작품의 생기를 더하였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작가는 지도자들의 독단을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로 독재자 시리즈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이 시리즈는 팝 아트에서 쓰이는 강렬한 색채의 대비가 가져오는 리듬성과 패러디에서 자주 활용되는 인물 풍자가 작품 내부에서 결합되어 뜻밖의 시각이 탄생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재자 시리즈는 작가의 농도 짙은 정치적 성향에 기반하여 작정하고 만든 시리즈임에도 불구하고 본래의 목적의식보다는 작품 자체로서의 리듬감이 더 부각되었다.
초상화의 본질에 도전하는 아이러니한 독재자 시리즈
초상화라는 것이 본래 사람의 얼굴이나 모습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생겨난 만큼 오늘날에 와서 역사나 풍속의 연구 자료로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특히 동양의 초상화는 단순히 인물을 그리는 데만 그치지 않고, 그 정신까지도 옮겨 그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 점을 미루어 볼때 이하의 독재자 시리즈는 권력의 중심에 있던 인물들의 행적을 기록을 위한 목적과 동시에 표현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오마쥬 하려고 했는데 묘사가 되어버린 눈물 시리즈
이하가 존경의 의미로 그린 초상화의 대표적 시리즈라고 할 수 있는 눈물 시리즈가 바로 그 대표적 시리즈이다. 눈물시리즈에서는 간디, 만델라, 마더 테레사와 같은 세계적 인물부터 시작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김근태 전 의원 등이 대상으로 등장한다. 눈물 시리즈 또한 같은 배경에 실존 인물들을 담아 시리즈로 묶었다는 점에서 독재자 시리즈와 같은 양상인데 결과물은 아주 대조적이다. 인물의 특징을 부각하기 위해 인물의 행적을 담을 수 있는 캐릭터를 찾아 인물의 공간감까지 조성했던 독재자 시리즈와는 달리 눈물 시리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말쑥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눈물 시리즈의 작품들은 거의 대부분의 작품이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그려졌는데 실제 사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사진과도 같은 초상 작품들이다. 팝 아트가 가진 강렬한 색채의 조화, 패러디가 가진 다양한 요소의 융합적 표현, 오마쥬가 가진 숭고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눈물시리즈는 소위 ‘민주화’나 ‘민중 지도자’의 타이틀을 단 유명인들의 눈물을 화두로 그들에 대한 ‘존경’을 핵심 삼았다는 점에서 독재자 시리즈보다 더 확고하고 짙은 의도를 보여준다. 그래서 아무런 설정을 이입하지 않은 것인데 오히려 의도를 확실하게 하고자 곁가지를 모두 쳐낸 이 그림들은 유명인의 사진을 변형하여 빠르게 한 장 만들어낸 느낌의 그림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그러므로 강렬한 의도가 이 작품들의 표현성을 더 흐릿하게 만들어 작가가 의도한 존경의 의미가 전도되었다는 것이 눈물 시리즈의 현 주소다.
가장 모호한 설정, 그러나 가장 강렬한 해석
목적과 의도의 갈림길에서 해방되어 충분한 매력을 발산한 작품이 등장하는 이하의 시리즈는 ‘스킨 시리즈’이다. 주로 여성의 몸을 소재로 한 스킨 시리즈는 성기만 겨우 가린 풍만한 여성의 몸을 그린 작품들이다. 인상적인 점은 피부의 색채가 전부 다르다는 것이다. 이는 하얀 피부를 가진 여성에게 집중된 미에 대한 찬사를 거스르겠다는 모종의 메시지로 해석 가능한 부분이다. 그런데 스킨 시리즈는 특정한 인물의 특정한 행적이나 공간을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작가가 인종 문제나 하얀 피부 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에 작품 의도를 두지 않고 창작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러한 지점에 대한 언급은 스킨 시리즈가 가진 엄연한 하나의 해석이 될 수 있다. 작가는 여성의 몸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고 그것은 특정 환경, 특정 역할을 맡은 여성이 아닌 몸 자체에 집중한 표현을 여과 없이 표현했다. 그렇기 때문에 스킨 시리즈는 눈물 시리즈나 독재자 시리즈에 비해 의도와 표현이 일치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큰 상관이 없는 성향의 작품이다. 이런 경우 여성의 몸에 대한 대중의 다양한 기호가 해석 그 자체로 인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스킨 시리즈는 의도와 표현의 일치도가 가장 높은 시리즈라는 언급이 가능하다. 의도의 디테일을 걷어내니 눈물 시리즈와 독재자 시리즈가 빠진 아이러니에서 해방 된 스킨 시리즈가 주는 매력이 바로 여기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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